일베는 무지와 혐오를 먹고 자란다. 어느새 우리 사회 곳곳에 깊숙이 뿌리를 내렸고, 이제는 대기업 총수마저 의심스러운 지경에 이르렀다. 최근 스타벅스 사건을 둘러싸고는 이름만 들으면 알 만한 정치인과 연예인들까지 잇달아 논란의 중심에 섰다. 한때는 숨어서 벌이던 행동을 이제는 ‘표현의 자유’라는 이름에 기대어 대놓고 벌인다.
“주먹으로 책상을 ‘탁’ 치니 ‘억’하고 쓰러졌다.”
고문을 일삼던 일제강점기 일본 순사가 했을 법한 말이다. 광주를 피로 물들인 독재자 전두환은 끝내 천수를 누리고 죽었고, 그 가족과 측근들은 피 묻은 돈으로 호의호식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나마 그의 이름이 더러운 이름으로 남았다는 사실에서 위안을 찾으려 하지만, 아직도 그를 ‘전땅크’라 부르며 추앙하는 이들을 보면 구역질이 난다.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란다는 말이 있다. 민주주의를 위해 목숨을 바치고 피를 흘린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다. 그런데 이제 ‘민주화’라는 단어는 조롱과 비아냥의 표현으로 소비되고 있다. ‘참교육’이라는 말 역시 비슷한 운명을 겪고 있다. ‘참교육의 함성으로’는 내가 몸담았던 전교조를 상징하는 노래였다.
굴종의 삶을 떨쳐 반교육의 벽 부수고침묵의 교단을 딛고서 참교육 외치니
굴종의 삶을 떨쳐 기만의 산을 옮기고
너와 나의 눈물 뜻 모아 진실을 외친다
보이는가 강물 참교육 피땀 흐르는
들리는가 함성 벅찬 가슴 솟구치는
아 우리의 깃발 교직원노조 세워
민족 민주 인간화 교육 만만세
젊은 시절, 모임에서 이 노래를 함께 부르면 가슴이 벅차오르곤 했다. 그러나 이제는 ‘참교육’이라는 말조차 쉽게 꺼내기 어려운 시대가 되었다. 일부 교사들조차 ‘말썽 피우는 학생을 혼내는 것’ 정도의 의미로 이 말을 쓴다. 동료 교사나 학생들에게 내가 전교조 조합원이라는 사실을 밝히는 것조차 조심스러운 일이 되었다.
‘넷**스’에서 만든 드라마 제목도 ‘참교육’이다. 광고만으로 내용을 단정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내가 젊은 시절 가슴 뛰며 외쳤던 그 ‘참교육’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어 보인다. 교육감 선거에서 반전교조를 당당하게 대표 구호로 내건 현수막을 볼 때마다, 젊은 날 진짜 교육에 품었던 믿음을 부정당하는 듯하여 슬프고 화가 난다.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 하나가 있다. 이제 전교조는 더 이상 최대 교원노조가 아니다. 오히려 혐오와 공격의 대상이 된 전교조에게 문제가 있다는 주장들이 점점 힘을 얻고 있다.
가랑비에 옷이 젖는다는 속담이 있다. 빈집에 깨진 유리창을 방치하면 금세 난장판이 되는 것이 세상 이치다. 혐오와 조롱을 대수롭지 않게 넘긴 결과가 지금의 현실이라면, 앞으로는 무엇이 남게 될까. 언젠가 일베적 감수성이 다수가 되는 세상이 올까 두렵다. 그래서 더욱 잃어버린 ‘참교육’을 다시 되찾아 외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