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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

학이편 12장

글: 논어일기 2020. 11.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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有子曰 禮之用 和爲貴 先王之道 斯爲美 小大由之 有所不行 知和而和 不以禮節之 亦不可行也

유자왈 예지용 화위귀 선왕지도 사위미 소대유지 유소불행 지화이화 불이예절지 역불가행야

유자가 말했다. 예의 쓰임은 악의 조화로움을 귀하게 여긴다. 선왕의 도는 이 조화를 아름답게 여겼다. 그러나 작고 큰일이 모두 이 조화로움에만 말미암는다면 그대로 행하여지지 않는 바가 있을 수도 있다. 오직 조화만을 알고 조화를 도모하고, 예로써 절제하지 않는다면 또한 행하여지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다.

<도올 만화 논어>에 쓰인 걸 옮겨 적어둔다. 예는 예절이나 에티켓이 아니라 선왕지도나 사회질서를 뜻한다. 인간 사회의 질서를 유지시키는 의례를 처음 만든 사람들이 바로 선왕이다. 오늘날 예와 악이 갈라져서 외교 예식은 딱딱한 프랑스식 의례가 되고 상례는 병원 영안실로 혼례는 예식장으로 향음주례는 노래방으로 음악은 콘서트 홀로 가버렸다. 고대 사회에서는 악 없는 예는 상상할 수도 없었고 예와 악의 조화로 참가한 사람들에게 장중한 황홀경을 맛보게 하는 것이 고대 문화의 핵심이었다.

'예기' 가운데 '악기'에는 아래와 같이 아름다운 문장으로 수준 높은 음악 철학을 적었다.

凡音之起 由人心生也 人心之動 物使之然也 感於物而動 故形於聲 聲相應 故生變 變成方 謂之音 比音而樂之 及干戚羽 謂之樂

범음지기 유인심생야 인심지동 물사지연야 감어물이동 고형어성 성상응 고생변 변성방 위지음 비음이락지 급간척우 위지악

무릇 음音이 일어나는 것은 사람 마음에서 말미암아 생긴다. 마음이 움직이는 것은 사물이 시켜서 그러한 것이다. 마음이 사물을 느껴서 움직이므로 소리를 형성하고 소리가 서로 만나 변화를 낳고 변화가 방향을 이룸을 음이라 이른다. 음을 서로 견주어 즐겨서 간척에 달린 깃털에 이르는 것을 악樂이라 이른다.

干戚: 무당이 춤출 때 드는 방패와 도끼

凡音者 生於人心者也 樂者 通倫理者也 是故知聲而不知音者 禽獸是也 知音而不知樂者 衆庶是也 唯君子爲能知樂

범음자 생어인심자야 악자 통윤리자야 시고지성이부지음자 금수시야 지음이부지악자 중서시야 유군자위능지악

무릇 음은 인간의 마음에서 생겨나는 것이고, 악은 인가의 윤리를 다 통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성만 알고 음을 모르는 자는 금수요, 음만 알고 악을 모르는 자는 보통 사람이요, 오로지 군자라야 악을 안다.

같은 책 악기에 이런 말도 있다.

大樂必易 大禮必簡

대악필이 대례필간

가장 위대한 음악은 반드시 쉽고 가장 위대한 예는 반드시 간단하다.

간이라는 말이 이렇게 좋은 뜻으로 읽히기는 처음이다. 악은 즐기는 것이고 예는 지키는 것이다. 악은 어우러짐이고 예는 법도다. 법도 없이 어우러기만 즐기다가는 방탕에 빠지기 쉽고 어우러짐 없이 법도만 따지면 사람을 잃기 쉽다. 클래식이나 뮤지컬 볼 때 옷차림을 따지는 것은 예를 따져서 즐기는 것이다. 그렇다고 고리타분한 정장만 고집하면 예만 따지는 셈이다. 제사 지낼 때 온갖 법도만 따지는 것도 그러하다. 악 없는 예는 구속이고 예 없는 악은 광란이다.

요즘 화려함보다는 간단함에 매료된다. 블로그 스킨도 그렇다. 구글을 보라. 가장 단순한 검색창만으로 세계를 제패하고 있다. 모든 것이 알맹이가 중요하다. 물론 알맹이를 감싸서 보여주는 껍데기도 반드시 필요하다. 다만 껍데기만 번드르르하고 알맹이는 없는 것을 두려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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