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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대산에 갈 때마다 월정사는 둘러보는데 상원사는 가지 않을 때가 있다. 상원사 오르는 길에는 '번뇌가 사라지는 길'이라고 쓰여 있다. 역사가 아주 오래된 사찰이다. 특이하게 석가모니가 아니라 문수보살을 모신 문수전이 있다. 문수전 계단 옆에는 세조와 얽힌 이야기에 나오는 고양이 석상이 있다. 이번에 보니 영산전의 문살이 아름답다.
오대산의 중대(中臺)에 있다. 705년(성덕왕 4)에 창건하여 진여원(眞如院)이라 하였다. 이 진여원은 보천(寶川)과 효명(孝明)의 두 왕자가 창건하였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오대산에 들어간 두 왕자 가운데 형인 보천은 중대 남쪽 진여원 터 아래에 푸른 연꽃이 핀 것을 보고 그곳에 암자를 짓고 살았으며, 아우 효명은 북대(北臺) 남쪽 산 끝에 푸른 연꽃이 핀 것을 보고 암자를 짓고 살았다.
이 두 형제는 예배하고 염불 하면서 수행하고 오대에 나아가 항상 공경스레 예배를 드렸으며, 날마다 이른 아침에 골짜기의 물을 길어다 차(茶)를 달여 1만 진신(眞身)의 문수보살(文殊菩薩)에게 공양하였다.
마침 신라의 왕이 죽자 나라사람들이 오대산으로 와서 두 왕자를 모시고 서라벌로 돌아가려 하였으나, 보천은 울면서 돌아가려 하지 않으므로 효명을 모시고 서울에 돌아와서 왕위에 추대하였다.
그 뒤 20여 년이 지난 705년 3월 8일 진여원을 처음으로 세웠다. 그 뒤 보천은 오대산을 나라를 돕는 신행결사도량(信行結社道場)으로 만들 것을 유언하였고, 그 유언에 따라 진여원에 문수보살상을 모시고 낮에는 『반야경』과 『화엄경』을 독송하게 하였으며, 밤에는 문수예참(文殊禮懺)을 행하게 하였다. 또, 결사의 이름은 화엄사(華嚴社)라고 하였고 복전(福田) 7원(員)을 두게 하였으며, 그 경비는 가까운 주현(州縣)에서 주었다고 한다.
출처: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27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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