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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와 잡담

군대 좋아졌다고 함부로 말하지 말자

글: 논어일기 2024. 6.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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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이 입대한 제7사단 신병교육대 24-9기 수료식이 열렸다. 아내는 새벽에 일어나 잡채를 만들었다. 부지런히 채비하고 나섰지만 아뿔싸! 고속도로가 공사 중이라 좀처럼 속력을 낼 수 없다. 가까스로 5분 전에 식장에 도착했다. 식장에 들어서자마자 문이 열리고 아이들이 우렁찬 목소리로 군가를 부르며 입장한다. 자리도 잡기 전이라 황급히 사진기를 꺼내 찍었으나 제대로 나온 사진이 별로 없다.

장면 #1. 2024. 6. 19. 10:00 화천체육관

사단장은 바쁜지 부사단장이 참석했다.

"부대 차렷!"

"부사단장님께 받들어총!"

"단결! 할 수 있습니다."

체육관이 쩌렁쩌렁 울린다. 정말 오랜만에 듣는 남자들만의 굵고 우렁찬 구호가 가슴을 울린다. 학교에서 졸업식이나 입학식과 같은 행사를 진행해야 할 때가 있어 다른 사람이 진행하는 행사를 눈여겨보는 편이다. 군에서는 총을 들지 않아도 받들어총이라고 하는 모양이다. 학교에서는 '교장 선생님께 인사'라고 말한다. 나도 화천에 있었던 제27사단 이기자부대를 나왔기에 제7사단 경례 구호를 이미 알고 있었다. 세글자인 '이기자'도 박자 맞추기 어려웠는데 무려 여덟 글자 구호라니 쉽지 않겠다. 아마 전군에서 경례 구호가 길기로 으뜸이지 않을까 싶다.

팡파르 횟수가 별의 개수에 따라 다르다고 아는 척을 했는데 전해 듣고 확인하진 않아서 맞는지는 모르겠다. 아주 먼 옛날 힘든 훈련을 마치고 복귀 행군으로 심신이 미약해졌을 때 부대가 가까워지면 멀리서 군악대가 연주하는 군가 소리가 참으로 듣기 좋았다. 오늘 이 자리에 있는 아들들 가운데 이제 막 한고비를 넘기는 순간 듣는 멋진 연주를 기억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어쩌면 군악대의 연주는 오늘 처음 듣지 않았을까 싶다. 연습할 때 군악대가 같이 하지는 않았을 수도 있으니 말이다.

수료식의 절정은 아들에게 계급장과 태극기를 달아주는 장면이었다. 사회자가 안내에 따라 아들 앞으로 뛰어가 어깨를 두드리고 힘껏 안아주었다. 손에 든 태극기와 이등병 계급장을 받아서 가슴에는 계급장을 팔에는 태극기를 붙여 주었다. 요즘은 찍찍이로 붙인다. 옛날에 새우깡 하나로 부르던 노란 작대기를 수료식 전날 전투복 주머니에 바느질로 달면서 뿌듯해했는데 말이다. 군대 이야기를 하다 보니 자꾸 옛날이야기를 하게 된다. 내게 경례하는 아들을 보며 살짝 눈물이 날 뻔했다. 동작이 느려서 앞에 서지 못하고 방송에 나오는 기자처럼 카메라를 허공으로 올려서 몇 장 찍었다.

1991년 신병교육대 수료식은 요즘 유치원 학예 발표회와 비슷한 행사였다. 집총 16개 동작, 총검술, 그리고 무엇보다 힘든 것은 분열이었다. 깨알 상식 하나. 사열은 정지하고 있는 부대가 움직이는 참관자에게 예를 표하는 것이고 분열은 정지하고 있는 참관자 앞을 부대가 움직이면서 예를 표하는 것이다. 보통 '우로 봐'를 한다. 분열은 국군의 날 행사를 생각하면 된다. 전국 각지에서 모인 오합지졸을 수료식에서 칼같이 오와 열을 맞춰 총검술 시범을 보이고 대형을 유지하며 연병장을 돌면서 경례하는 신병을 만드는 일은 무자비한 훈련이 있기에 가능했다. 그래서 나와 같은 옛날 사람은 가끔 요즘 군대 아주 좋아졌다고 말하곤 한다.

장면 #2. 2024. 6. 19. 11:00경 화천 읍내 이발소

수료식을 마친 아들과 함께 읍내로 나왔다. 복귀 시각은 18시 30분. 우선 점심으로 아들이 좋아하는 막국수를 먹기로 했다. 아들은 먼저 머리를 깎고 싶단다. 눈에 띄는 이발소 앞에 차를 세우고 들어가니 연세가 지긋하신 분이 머리를 깎고 계신다. 이발사의 아내로 보이는 아주머니가 잠깐이면 된다기에 기다리기로 했다. 이어진 사건을 생각하면 기다리지 말고 나왔어야 했다. 아들 바로 옆에서 보니 제법 긴 구레나룻이 눈에 띈다.

"보급품으로 받은 면도기 쓸 만하니? 집에서 쓰던 면도기 가져올 걸 그랬나!"

"뭐 보급품도 쓸 만합니다."

옆에 앉아 있던 아주머니가 끼어든다.

"요즘 군대 좋아져서 피엑스에 다 있으니 걱정하지 마세요."

"이등병은 피엑스 마음대로 가기 어렵잖아요."

이발사가 끼어든다.

"요즘 군인 애들 아무 때나 다 피엑스에 앉아 있대."

"에이 그럴 리가요!"

그러자 갑자기 목소리를 높여 요즘 군대는 군대가 아니라는 둥 훈련을 더 빡세게 해야 한다는 둥 이상한 말을 하기 시작한다. 슬슬 짜증이 났다.

"요즘도 훈련받다가 죽은 아이도 있는 것 아시잖아요?"

"죽인 것이 아니고 그 아이는 말을 안 들어서 훈련받다가 일사병으로 죽었대요."

죽였다고 말하지 않았지만 뭣이 중한가! 더는 앉아 있을 이유가 없다.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아들! 딴 데로 가자."

"그렇게 하시던가."

전형적인 비꼬는 말투다. 마음 같아서 욕을 한마디 하고 싶지만 참았다. 마무리 우리 가족끼리 한참을 비난하면서 화를 삭였다. 같은 사건을 두고 가족을 군에 보낸 이와 그렇지 않은 이의 온도 차이가 이렇게 크다.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바는 아니지만, 몸소 확인하니 놀랍다. 불매 운동이라도 벌이고 싶은 심정이다. 다행히 바로 건너편에도 이발소가 있다. 이발사가 손도 빠르고 친절하다. 현금을 내미니 '나라사랑카드'로 하면 할인이 된다고 알려준다. 화천사랑 상품권을 받아서 점심값에 보탰다. 점심은 두 번째 이발사가 추천한 식당에서 칡냉면을 먹었다. 서빙하시는 분이 아들을 보고 오늘 수료식을 했냐고 묻더니 고생했다는 덕담을 건넨다. 덕분에 화가 좀 풀렸다.

자칭 스스로 보수라 일컫는 자들 가운데 비슷한 생각을 하는 이들이 제법 있을 것이다. 아무 생각없음이 보수는 아니다. 부하를 죽음으로 내몬 임성근 사단장이 "군인은 국가가 필요할 때 군말 없이 죽어주도록 훈련되는 존재"라고 말했다고 한다. 지난달에 북에서 풍선이 날아오던 날이던가 휴일인데 정해진 시각에 아들이 전화하지 않아 걱정했던 일이 있다. 갑자기 평일처럼 일과를 진행했다기에 영문을 몰랐는데 국방부 장관이 갑자기 내린 명령이었다고 한다. 대책도 없이 내린 명령으로 갑자기 출근하게 된 군인들이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웠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확인이 필요한 이야기다.

우리 아들이 오늘 입장하며 부른 군가는 '진군가'다. 엄청 많이 부르던 노래는 아니라 세세한 가사가 떠오르지 않아서 검색해 본다. 가사만 있으면 그냥 따라 부를 수 있겠다.

진군가

높은 산 깊은 물을 박차고 나가는 사나이 진군에는 밤낮이 없다.
눌러쓴 철모 밑에 충성이 불타고 백두산까지라도 밀고 나가자
한 자루 총을 메고 굳세게 전진하는 우리의 등 뒤에 조국이 있다.

요즘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보라. 우리의 등 뒤에 조국이 있다는 말이 우습게 들린다. 장병들에게 경례를 받고 "부대 열중쉬어"도 못하는 이가 대통령이다. 그는 사병 하나 죽었다고 사단장이 책임지냐며 격노했다고 한다. 대통령은 양쪽 눈 시력 차이가 너무 큰 '부동시(不同視)'라서 군에 가지 않았다. 그는 인식표가 둘인 까닭을 알고 있을까?

요즘 군대 좋아졌다고 함부로 말하지 말자. 군번줄에 머리 박아 보지 않았으면 말하지 마라. 신병 교육 수료식이 땡볕이 내리쬐는 연병장이 아닌 체육관에서 별다른 프로그램 없이 끝나서 정말 너무 좋다. 화천읍을 벗어날 수 없다는 규정에 따라 부대에서 가까운 펜션을 잡았다. 아들은 오랜만의 시간에 쫒기지 않는 샤워를 하고 잠깐 눈을 붙였다. 먹고 싶다던 과일을 먹고 엄마표 잡채도 먹었다. 네시 반부터 숯불을 피우고 고기를 구워 먹고 나니 아쉽게도 금세 복귀할 시각이다. 입대하던 날과 마찬가지로 부대 앞에 바로 내려주고 돌아 나왔지만 마음이 한결 가볍다.

뜬금없이 김수영 시인의 시가 떠오른다. 글과 어울리지 않아도 마음가는대로 적는다. 

푸른 하늘을 ― 김수영

푸른 하늘을 제압하는
노고지리가 자유로웠다고
부러워하던
어느 시인의 말은 수정되어야 한다.

자유를 위해서
비상하여 본 일이 있는
사람이면 알지
노고지리가
무엇을 보고
노래하는가를,
어째서 자유에는
피의 냄새가 섞여 있는가를,
혁명은 왜 고독한 것인가를.

혁명은
왜 고독해야 하는 것인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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