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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

술이편 20장

글: 논어일기 2022. 1.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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子不語 怪$\cdot$力$\cdot$亂$\cdot$神

자불어 괴력난신

공자께서는 괴(怪)와 력(力)과 난(亂)과 신(神)을 말씀하지 않으셨다. 

괴(怪): 괴상함, 기이함, 불가사의함. 력(力): 특별한 힘의 세계 난(亂): 난세의 온갖 혼란스러운 현상 신(神): 초자연적인 신비

공자는 기원전 551년부터 기원전 479년까지 살았다. 논어는 공사 사후 제자들이 공자 말씀을 모아 만들었다. 공자는 춘추시대를 살았고 논어를 만든 제자들은 전국시대를 살았다. 난세인 춘추전국시대에는 온갖 괴력난신 이야기가 넘쳐 났을 것이다. 2022년에도 세상에 이런 일이, 믿거나 말거나, 서플라이즈와 같은 괴력난신 이야기는 흥미를 불러일으킨다. 공자는 괴력난신에 빠지는 어리석음을 경계했다.

다른 장에 신(神)은 공경하되 멀리하라는 말이 있다. 유가는 신의 존재를 부정하지 않는다. 다만 괴력난신을 말하거나 가르치지 않았다는 말이다. 신이 존재하는가를 두고 벌이는 다툼은 의미 없는 일이다. 신은 합리성과 따로 떨어진 믿음의 영역에 있기 때문이다. 이 장으로써 합리성에 도달한 시기는 동양 철학이 서양 철학에 훨씬 앞선다. 요즘 서양 철학은 합리성을 갖춘 것으로 여기고 동양 철학은 마치 점성술처럼 여기는 사람들이 많다. 유교(儒敎)라고 부르기 때문에 기독교와 같은 일신교를 믿는 이들에게 배척당하는 느낌이다.

오늘날 서양 철학이 뛰어나 보이는 것은 배경에 발달한 과학 문명이 있기 때문이다. 르네상스가 없었다면 어땠을까? 성경에만 빠져서 아직도 마녀 사냥을 하고 있을 수도 있다. 그러고 보면 서양도 중세보다 훨씬 이전에 있던 그리스 시대가 더 합리적으로 보인다. 종교는 이성을 마비시키는 마약인가? 아무튼 탈레반처럼 지나치게 종교에 빠진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구절이다.

이 장을 보면 유교(儒敎)라 부르지 말고 유학(儒學)으로 부르는 것이 옳다.

괴력(怪力)은 이 우주가 돌아가는 조화의 흔적일 뿐이다. 그것은 비록 부정(不正)한 것이지만, 마음속 깊이 따져보지 않으면 쉽사리 밝힐 수 없는 것이므로 성인께서는 쉽게 그것을 주제로 사람들에게 말씀하지 않으셨다.

주자

성인은 한결같음(常)을 말하며 괴(怪)를 말하지 않고 인간의 내면에 쌓이는 덕(德)을 말하며 력(力)을 말하지 않고 질서 있는 세계(治)를 말하며 란(亂)은 말하지 않고, 사람(人)을 말하며 신(神)을 말하지 아니한다.

사량좌(謝良佐): 1050년~1103년 송나라 유학자

베트남 하노이에 있는 공자문묘에서

베트남 하노이에 있는 공자문묘는 1070년에 세워졌으며, 1076년에는 베트남 최초의 대학으로 우리나라 성균관과 비슷한 것이다. 유학은 사회주의와도 어우러질 수 있다. 아니 어쩌면 사회주의와 닮은 구석도 있다. 유학은 천주교와도 잘 어우러질 수 있는데 신주를 모시는 일을 두고 박해를 자초한 것이 안타깝다. 박해를 가한 쪽이나 자초한 쪽이나 제대로 공자의 뜻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이 아닐까? 조상에게 지내는 제사는 예수와 다른 우상을 섬기는 일이 아니다. 오늘날처럼 형식을 조금 바꿔서 가까운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는 것으로 타협할 수는 없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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