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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

태백편 5장, 6장

글: 논어일기 2022. 2.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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曾子曰, “以能問於不能, 以多問於寡, 有若無, 實若虛, 犯而不校, 昔者吾友嘗從事於斯矣.”

증자왈 이능문어불능 이다문어과 유약무 실양허 범이불교 석자오우상종사어사의

증자가 말하였다. "능하면서도 능하지 못한 이에게 물으며, 학식이 많으면서도 학식이 적은 자에게 물으며, 가지고 있으면서도 없는 것처럼 여기고, 가득 차 있으면서도 빈 것처럼 여기고, 누가 시비를 걸어와도 따지며 다투지 않는다. 옛적에 내 친구들이 이런 경지에 종사하는 사람들이었다."

曾子曰, “可以託六尺之孤, 可以寄百里之命, 臨大節而不可奪也, 君子人與? 君子人也.”

증자왈 가이탁육척지고 가이기백리지명 임대절이 불가탈야 군자인여 군자인야

六尺: 14세 이하 미성년자 奪: 빼앗다

증자가 말했다. "부모를 일찍 잃고 고아가 된 어린 군주를 맡길 만하고, 사방 백 리 한 나라의 운명을 기탁할 만하며, 사직이 위태로운 위기에서 아무도 그 절개를 빼앗을 수 없는 사람! 그 사람은 군자다운 사람이련가? 군자다운 인물이로다!"

바로 떠오르는 임금은 어린 조카를 내쫓고 자리를 차지한 세조 임금이다. 오늘날도 수양대군으로 불리는 세조가 단종을 내치지 않고 왕위를 이어가게 했다면 어찌 되었을까? 역사에 가정은 없지만 결과가 그렇게 좋지 못했을 것이다. 어린 왕에 기대어 수양대군을 죽이고 권력을 차지하려는 이들도 많았을 터이기 때문이다. 조선왕조를 비롯한 많은 왕조에서 맏이가 무난하게 왕위를 계승하지 못한 경우가 많으니 그만큼 군자가 없었다는 증거이다. 증자는 뛰어난 제자임이 분명하지만 공자왈로 시작하는 구절과 비교하면 스승인 공자에게는 한참 못 미치는 듯한 느낌이다.

어찌되었건 훗날 역사는 왕위를 찬탈한 왕보다 죽음으로 절개를 지킨 사람을 더 기린다.

수양산 바라보며 이제를 한 하노라 / 주려 주글진들 채미도 하난 것가 / 아무리 푸새엣 것인들 그 뒤 땅에 낫더니 -매죽헌 성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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