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신라 시대엔 행정을 위해 9주 5소경을 두었다. 원주는 다섯 개의 작은 서울인 5소경 가운데 하나인 북원경이었다. [참고: 중원경(충주), 서원경(청주), 남원경(남원), 금관경(김해)] 역사에 중요한 도시로 등장한 지 꽤 오래된 도시이지만 이렇다 할 유적은 거의 없다. 군사적 요충지라 전쟁의 참화를 비껴가지 못한 탓이 아닐까 싶다. 원주시 문막읍 부론리에는 아는 사람만 아는 유적이 있는 법천사지가 있다. 상당히 크게 번성했던 사찰이지만 건물은 모두 사라지고 흔적만 남아 있다. 꽤 오래 발굴을 하고 일부 복원을 했으나 여전히 쓸쓸함만 가득하여 찾는 사람도 거의 없다. 하지만 그래서 묘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어 근처를 지나다 시간이 나면 한 번씩 둘러보곤 한다.
원주 법천사지(原州 法泉寺址. 사적 제466호)는 『고려사』, 『신증동국여지승람』, 『동문선』 등 문헌에 전하는 법천사(法泉寺)는 신라 말에 산지 가람으로 세워져 고려시대에 이르러 대대적으로 중창된 사찰이다. 특히 화엄종과 더불어 고려시대 양대 종단이었던 법상종의 고승 정현이 주지로 있어 법상종 사찰로 번성하였으며, 국사(國師)였던 지광국사 해린이 왕실의 비호 하에 법천사로 은퇴하면서 크게 융성하였다가 조선 임진왜란 때 전소되었다.
남아 있는 가장 멋진 유적은 지광국사 현묘탑비이다. 이름 그대로 지광국사 해린(984∼1067)을 기리는 현묘탑을 위한 비석이다. 그러면 탑은 어디에 있을까? 일제강점기에 일본 오사카로 몰래 빼돌려졌다가 돌려받은 다음 경복궁 경내에 있다가 보존처리를 위하여 대전에 있는 국립문화재연구소로 옮겨졌다.
며칠 전에 일본으로부터 돌려 받은 조선왕조실록 오대산사고본을 원래 있던 자리로 되돌려 놓기로 했다는 소식을 듣고 법천사지가 떠올랐다. 원주시청을 비롯한 여러 단체가 탑을 제자리에 돌려놓으려 애쓰고 있으나 아직까지도 좋은 소식은 듣지 못했다. 조계종을 비롯한 여러 불교 종단이 이런 유서 깊은 사찰을 위해 불사를 일으키지는 못하더라도 본래 있던 탑을 제자리에 돌려 놓는 일에 힘을 보탰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