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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

위령공편 1장~3장

글: 논어일기 2024. 1.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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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령공은 논어 제15편으로 41장으로 이루어졌다. 전편을 먼저 올리며 시작한다.

01 衛靈公問陳於孔子. 孔子對曰, “俎豆之事, 則嘗聞之矣, 軍旅之事, 未之學也.” 明日遂行 在陳絶糧, 從者病, 莫能興. 子路慍見曰, “君子亦有窮乎?” 子曰, “君子固窮, 小人窮斯濫矣.”

02 子曰, “賜也, 女以予爲多學而識之者與?” 對曰, “然, 非與?” 曰, “非也, 予一以貫之.”

03 子曰, “由! 知德者鮮矣.”

04 子曰, “無爲而治者其舜也與? 夫何爲哉? 恭己正南面而已矣.”

05 子張問行. 子曰, “言忠信, 行篤敬, 雖蠻貊之邦, 行矣. 言不忠信, 行不篤敬, 雖州里, 行乎哉? 立則見其參於前也, 在輿則見其倚於衡也, 夫然後行.” 子張書諸紳. 

06 子曰, “直哉史魚! 邦有道, 如矢, 邦無道, 如矢. 君子哉蘧伯玉! 邦有道, 則仕, 邦無道, 則可卷而懷之.”

07 子曰, “可與言而不與言, 失人, 不可與言而與之言, 失言. 知者不失人, 亦不失言.”

08 子曰, “志士仁人, 無求生以害仁, 有殺身以成仁.”

09 子貢問爲仁. 子曰, “工欲善其事, 必先利其器. 居是邦也, 事其大夫之賢者, 友其士之仁者.”

10 顔淵問爲邦. 子曰, “行夏之時, 乘殷之輅, 服周之冕, 樂則韶舞. 放鄭聲, 遠佞人. 鄭聲淫, 佞人殆.”

11 子曰, “人無遠慮, 必有近憂.”

12 子曰, “已矣乎! 吾未見好德如好色者也.”

13 子曰, “臧文仲其竊位者與! 知柳下惠之賢而不與立也.”

14 子曰, “躬自厚而薄責於人, 則遠怨矣.”

15 子曰, “不曰如之何, 如之何者, 吾末如之何也已矣.”

16 子曰, “羣居終日, 言不及義, 好行小慧, 難矣哉!”

17 子曰, “君子義以爲質, 禮以行之, 孫以出之, 信以成之. 君子哉!”

18 子曰, “君子病無能焉, 不病人之不己知也.”

19 子曰, “君子疾沒世而名不稱焉.”

20 子曰, “君子求諸己, 小人求諸人.”

21 子曰, “君子矜而不爭, 羣而不黨.”

22 子曰, “君子不以言擧人, 不以人廢言.”

23 子貢問曰, “有一言而可以終身行之者乎?” 子曰, “其恕乎! 己所不欲, 勿施於人.”

24 子曰, “吾之於人也, 誰毁誰譽? 如有所譽者, 其有所試矣. 斯民也, 三代之所以直道而行也.”

25 子曰, “吾猶及史之闕文也. 有馬者借人乘之, 今亡矣夫!”

26 子曰, “巧言亂德. 小不忍, 則亂大謀.”

27 子曰, “衆惡之, 必察焉, 衆好之, 必察焉.”

28 子曰, “人能弘道, 非道弘人.”

29 子曰, “過而不改, 是謂過矣.”

30 子曰, “吾嘗終日不食, 終夜不寢, 以思無益, 不如學也.”

31 子曰, “君子謀道不謀食. 耕也, 餒在其中矣, 學也, 祿在其中矣. 君子憂道不憂貧.”

32 子曰, “知及之, 仁不能守之, 雖得之, 必失之. 知及之, 仁能守之. 不莊以涖之, 則民不敬. 知及之, 仁能守之, 莊以涖之, 動之不以禮, 未善也.”

33 子曰, “君子不可小知而可大受也, 小人不可大受而可小知也.”

34 子曰, “民之於仁也, 甚於水火. 水火, 吾見蹈而死者矣, 未見蹈仁而死者也.”

35 子曰, “當仁, 不讓於師.”

36 子曰, “君子貞而不諒.”

37 子曰, “事君, 敬其事而後其食.”

38 子曰, “有敎無類.”

39 子曰, “道不同, 不相爲謀.”

40 子曰, “辭達而已矣.”

41 師冕見, 及階, 子曰, “階也.” 及席, 子曰, “席也.” 皆坐, 子告之曰, “某在斯, 某在斯.” 師冕出. 子張問曰, “與師言之道與?” 子曰, “然, 固相師之道也.”

위령공은 전편에서 공자가 무도無道하다고 평가한 인물이다. 그러나 공자가 당시 그를 만난 것 만으로도 위령공에게도 뭔가 끌리는 데가 있었던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공자는 중숙어는 빈객을 맡아보게 하고, 축타는 종묘를 맡아 보고 왕손가는 군대의 지휘를 맡아보게 있다는 말로써 위령공이 인재를 등용할 줄 아는 인물로 봤고, 공자 역시 그가 사람 볼 줄 안다면 자신도 역시 중용될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한 것 같습니다.

정말로 위령공은 공자 짐작대로 인사에는 재능이 있었던 것 같으며, 위령공 1장에서 공자에게 진법에 관하여 물은 것으로 볼 때 공자를 이와 같은 방식으로 면접을 본 게 아닌가 생각됩니다. 공자는 일언지하에 "군사를 지휘하는 일은 아직 못 배웠다며" 이튿날 길을 떠났다고 논어는 기록하고 있습니다. 공자의 이런 태도는 전국시대 부국강병을 목표로한 각 나라의 입장과 다소 어긋난 측면이 있었고, 14년 동안 세상을 주유한 과정 속에서 대쪽같은 그를 흔쾌히 등용하려고 한 군주가 있을 리 만무했습니다. 이렇게 제국의 군주들이 강력한 군사 내지 경제력 외 도의와 덕치에 무관심한 것에 대하여 공자 역시 탐탁치 않게 생각했던 것인지 누구한테 하소연 할 만한 사람도 없고, 가장 나이차가 적고 심지가 곧고 직선적인 자로에게 "덕을 알아주는 사람은 드물다."고 아쉬움을 토로하는가 하면 위나라의 거백옥을 들어 "나라에 도가 있으면 벼슬을 했고 나라에 도가 없을 때에는 덕을 거두어 숨길 수 있었다."며 바르고 곧은 사어와 그의 천거로 등용된 거백옥을 높이 평가합니다.

8장에서 등장하는 유명한 경귀 "살신성인 殺身成仁" "뜻이 있는 선비와 인자는 삶을 구하여 인을 해치는 일이 없고 몸을 죽여 인을 이루는 일은 있다." 는 이 귀절 역시 위나라의 사어의 사례에서 그 의미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위나라 대부 사어는 성품이 몹시 강직한 사람이었습니다. 처음에 거백옥을 위령공에게 천거하였는데 영공은 사어의 말을 무시하고 거백옥이 아니라 능력 없는 미자하를 등용합니다. 그 후에도 연거푸 거백옥을 쓸 것을 간언하였으나 허투로 돌아가고 급기야 사어는 중병에 걸려 몸져 눕게 되지요. 그리고 자신의 시체를 창 밑에 그냥 놔두라는 유언을 남깁니다. 조문을 갔다가 이를 듣게 된 영공은 "과인의 잘못이다." 뉘우치고 사어의 말대로 마침내 거백옥을 등용했다고 합니다. 즉, 사어(史魚)는 그 자신이 죽으므로 인을 이뤘다는 말인데 어쩌면 공자가 사어와 거백옥의 행적을 통해서 '殺身成仁'이와 같은 말을 한 것이 아닌 지 추측해 봅니다. 한편 자공은 "한마디의 말로 평생토록 실행할 만한 것이 무엇"인지 스승에게 묻자 스승은 용서恕라고 말하시며, 이를 풀이하기를 "기소불욕 물시어인 (己所不慾 勿施於人)내가 하기 싫은 일을 남에게 시키지 말라." 고 이인, 안연편에 이어 여기 위령공 편에서도 일이관지 (一以貫之) 말씀하고 있습니다.

衛靈公問陳於孔子. 孔子對曰, “俎豆之事, 則嘗聞之矣, 軍旅之事, 未之學也.” 明日遂行, 在陳絶糧, 從者病, 莫能興. 子路慍見曰, “君子亦有窮乎?” 子曰, “君子固窮, 小人窮斯濫矣.”

위령공문지어공자 공자대왈 조두지사 즉상문지의 군려지사 미지학야 명일수행 재진절량 종자병 막능흥 자로온현왈 군자역유궁호 자왈 군자고궁 소인궁사람의

위령공이 진법에 대하여 물었다. 공자께서 대답하여 말씀하셨다. "젯상을 차리는 법도라면 일찍이 들은 적이 있으나 군대에 대한 일이라면 아직 배우지 못했습니다." 다음날 드디어 떠났다. 진나라에 머물 때 식량이 떨어졌다. 따르는 사람이 병이 났는데 일어나게 할 수 없었다. 자로가 성을 내며 스승을 뵙고 말했다. "군자도 역시 곤궁함이 있습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군자는 곤궁해도 굳게 지키지만 소인이 곤궁하면 곧 넘치게 되지."

子曰, “賜也, 女以予爲多學而識之者與?” 對曰, “然, 非與?” 曰, “非也, 予一以貫之.”

자왈 사야 여이여위다학이식지자여 대왈 연 비여 왈 비야 여일이관지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사야 너는 내가 많이 배우고 그것을 기억하는 사람으로 여기고 있느냐?" 자공이 답하였다. "그러하옵니다. 아니옵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아니다. 나는 하나의 이치가 모든 것을 꿰뚫은 것이다."

子曰, “由! 知德者鮮矣.”

자왈 유 지덕자선의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유야! 덕을 아는 이가 드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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