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출근길에 '김종배의 시선집중'을 즐겨 듣는다. 몇 주 전에 손석희 씨가 나왔다. '손석희의 시선집중'이던 시절에 김종배 씨도 함께 했다고 한다. 아무튼 그가 책을 썼다는 이야길 들었다. 잊고 지내다가 그가 쓴 책을 샀다. '장면들'은 두 번째로 산 전자책이다. 전자책은 결재를 하면 바로 읽을 수 있어서 참 좋다. 천천히 두고 읽으려 했는데 재미있어서 단숨에 읽었다.
공자를 만난 제경공이 묻는다. "정치란 무엇인가?" 공자는 말했다. "군주가 군주답고, 신하가 신하답고, 아비가 아비답고, 자식이 자식다운 것이 정치의 핵심입니다." 이름에 걸맞은 사람이 되기는 생각보다 어렵다. 언론인다운 언론인이 흔치 않은 세상에 손석희는 보석 같은 존재였다.
이 책에서 '어젠다 세팅'을 너머 '어젠다 키핑'을 말하고 있다. '그 배, 세월호'에서 제이티비씨가 200일이나 '세월호' 보도를 이어간 과정을 적었다. 제이티비씨가 아니었다면 '세월호'는 잊히고 말았을 수도 있다. 아직도 팽목항에서 소식을 전하던 서복현 기자가 생각난다. 우리는 손석희에게 신세를 졌다.
'태블릿 피씨, 스모킹건으로 연 판도라의 상자'도 흥미롭다. '뉴스룸'은 국정을 농단한 최순실을 세상에 드러내고 결국 박근혜를 탄핵시키는데 큰 힘이 되었다. 이 꼭지엔 놀랍게도 크리스마스 선물로 사면을 받은 박근혜가 냈던 사과문이 실려 있다.
취임 후에도 일정 기간 동안은 일부 자료들에 대해 의견을 들은 적도 있으나 청와대의 보좌 체계가 완비된 이후에는 그만두었습니다. 저로서는 좀 더 꼼꼼하게 챙겨보고자 하는 순수한 마음으로 한 일인데,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치고 놀라고 마음 아프게 해 드린 점 송구스럽게 생각합니다. 국민 여러분께 깊이 사과드립니다.
며칠 전에 본 것 같은 사과문이다. 태블릿 피씨가 보도되고 최순실의 통화 녹취록도 있다. 글로 읽는데도 최순실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오 년 전에 하도 많이 들어서 그런 모양이다.
지금 큰일 났네.... 그러니까 고(영태)한데 정신 바짝 차리고 걔네들이 이게 완전 조작품이고 예네들이 이거를 저기 훔쳐가지고 이렇게 했다는 것을 몰아야 되고, 이성한이도 아주 계획적으로 하고 돈도 요구하고 이렇게 했던 저걸로 해서 하지 않으면, 분리 안 시키면 다 죽어.
'오징어 게임' 속 대사도 생각난다. 조국 사태를 거치면서 '뉴스룸'은 환호하던 이들에게 비난과 조롱을 받게 된다. 손석희란 이름이 기레기 명단에 올려졌다고 적고 있다. 대한민국의 오늘이 있기까지 언론인 손석희는 최선을 다했다. 적어도 손석희 덕분에 최순실과 박근혜 같은 자들이 청와대를 들락거리지 않게 되었다. 더 흥미로운 이야기도 있으므로 꼭 한 번씩 읽어보기를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