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적지는 안면도였다. 겨울에 들른 안면도는 조금 쓸쓸해서 오래 돌아보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잠깐 서산에 들렀다. 원래 목적지가 아닌 탓에 많이 돌아보지는 못하고 해미읍성, 개심사와 용현리 마애여래삼존상을 보았다. 우리나라가 좁다고 하지만 내가 사는 강원도와 충청남도 풍경은 판이하게 다르다. 삼국시대가 끝나고 천오백여 년이 지났음에도 삼국이 있던 지방마다 조금씩 다른 색을 간직하고 있다. 여행을 하면서 지방이 가지고 있는 특색을 살펴보는 것도 재미있는 일이다.
해미읍성은 규모는 작지만 600년이다 되었는데도 아주 잘 보존되어 있다. 연도 날릴 수 있고 자전거를 탈 수도 있어서 좋았다. 활도 쏘면서 찬찬히 둘러보면 아기자기한 재미가 쏠쏠하다. 해마다 축제도 열리고 있었는데 코로나로 열리지 못했다. 코로나가 사라지고 축제가 다시 열리면 때를 잘 맞춰서 참여하면 더욱 좋을 듯하다.
조선 제3대 태종대왕이 1416년에 군사를 이끌고 도비산에 올라 서산태안지방의 지형을 보면서 덕산에 있던 병마절도사영을 해미로 옮기도록 결정합니다. 이로부터 태종 17년(1417년)부터 세종 3년(1421년) 사이에 축성되었으며, 효종 3년(1652년) 청주로 옮겨가기 전까지 230여 년간 종 2품 병마절도사가 주둔하는 충청도의 군사 중심지로서 국방은 물론 내란 방지 토포(討捕) 등의 임무를 맡기도 하였습니다. 해미읍성은 성곽 둘레 1800m, 높이 5m, 면적은 약 20만㎡의 규모로 조성되었으며,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선조 12년(1579년)에 병사영의 군관으로 10개월간 근무하기도 하였습니다. 조선 후기 천주교를 탄압하면서 1천여 명의 천주교 신자를 처형했던 역사적 사건이 일어난 순교성지이기도 합니다. 서산 해미읍성 축제 누리집
개심사는 이름만 보고 찾았는데 생각보다 보기 좋은 절집이다. 범종각이나 건물에 이리저리 굽은 나무를 다듬지 않고 그대로 기둥으로 쓰고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예서체로 보이는 현판 글씨도 좋고 마음을 연다는 개심(開心)이란 이름도 좋다. 여기도 겨울보다는 여름이나 가을에 찾으면 좋을 듯하다.
654년(의자왕 14) 혜감(慧鑑)이 창건하여 개원사(開元寺)라 하였다. 1350년(충숙왕 2)처능(處能)이 중창하고 개심사라 하였으며, 1475년(성종 6)에 중창하였다. 그 뒤 1740년(영조 16) 중수를 거쳐 1955년 전면 보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개심사(開心寺)]
'백제의 미소'로 널리 알려진 용현리 마애여래삼존상은 특별히 설명이 필요 없으리라. 워낙 외진 곳이라 마음먹고 찾아가지 않으면 가기 힘든 곳이다. 뭔가 큰 기대를 품고 간다면 조금 실망할 수도 있겠으나 어린 자녀와 함께라면 역사책에 나오는 작품을 체험할 수 있는 장소라 좋을 것이다. 안내판 설명대로 화려하지 않고 수수해서 친근한 느낌이 좋았다. 날씨가 흐려서 느낌이 제대로 살지 않아서 안타깝다.
우거진 풀 숲에 묻혀있던 백제의 미소, 그윽하면서도 천진난만한 미소가 돋보이는 서산 마애여래삼존상이 세상에 알려진 것은 불과 53년 전이었다. 발견 당시 서산 마애여래삼존불은 주변의 자연경관과 혼연히 어울리면서 인공과 자연의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반듯하지 않은 바위 면에 불상을 새기면서 야외에서 올려다보는 시선까지 고려하여 얼굴은 높게 부각하고 아래로 내려오면서 차츰 낮은 각도로 조각을 하였다. 이처럼 서산 마애여래삼존상은 가장 어려운 조건에서 제작되었지만 가장 편안한 인상으로 완성됐다. 서산 마애여래삼존상을 통해 백제인들의 감각과 정성에 대해 살펴보자 <서산 마애여래삼존상 방문정보> 위치 : 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용현리 2-1 문화유산채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