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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나무 숲길에 반해서 오대산 월정사를 자주 들른다. 전나무는 겨울에도 푸르지만 다른 나무들은 그렇지 못해서 월정사 오르는 길은 겨울보다 봄이 훨씬 좋다. 하지만 눈 덮인 겨울에는 풍광이 좋을 때 즐기지 못하는 호젓함을 맛볼 수 있어서 좋다. 가을 단풍을 더할 나위 없이 좋은데 인파가 장난이 아니다. 여러 가지를 고려했을 때 이제 막 새순이 돋아나는 4월이 가장 좋을 때라고 생각한다. 비교를 위해 같이 모아 놓는다. 분명 여름에도 갔는데 사진을 찾을 수 없다.
1. 2021.2.9.
2. 2017.4.23.
3. 2019.5.19.
4. 2017.10.15.
월정사에서 지키던 조선왕조실록 오대산 사고본이 마침내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게 된다는 뉴스를 접했다. 간단하게 오대산 사고본이 지나온 역사를 찾아보았다.
『조선왕조실록』은 조선 태조에서부터 조선 철종 때까지 25대 472년간(1392∼1863)의 역사를 편년체(編年體: 역사적 사실을 일어난 순서대로 기술하는 역사 서술의 한 방식)로 기록한 책이다.
오대산사고는 1606년(선조 39) 경에 설치되었다. 임진왜란으로 전주사고본을 제외한 나머지 실록들이 모두 소실되자 조선정부는 1603년(선조 36) 7월부터 1606년 3월까지 전주사고본을 바탕으로 태조부터 명종까지의 실록 4부를 재간행했다. 그리고 강화·태백산·묘향산·오대산 등지에 사고를 새로 건축하여 서울의 춘추관사고와 함께 5곳의 사고에 실록을 보관하였다. 당시 실록을 재간행할 때 4부 중 3부는 정본(正本)으로 인쇄했지만, 전란 이후 경제적인 어려움 때문에 나머지 1부는 정본 인쇄를 하지 못했다. 이에 조선정부는 최종 교정쇄본을 장정(裝幀)하여 정본을 대신하도록 했는데, 이 교정쇄본이 오대산사고에 보관되었다. 따라서 오대산사고본 실록 중 태조~명종실록은 교정쇄본이고 이후에 소장된 선조~철종실록은 정본이다.
오대산사고본 실록은 일제강점기인 1913년경에 일제에 의해 동경제국대학 도서관에 기증하는 방식으로 반출되었고, 1923년 관동대지진 당시 화재로 인해 대부분이 소실되었다. 화를 면한 오대산사고본 실록 중 27책이 1932년에 경성제국대학으로 이관된 이후 서울대학교 규장각으로 이어졌다. 오대산사고본실록 27책이 1973년 국보로 지정된 후 일본에 남아있던 오대산사고본실록 47책(2007. 2. 26. 국보 추가지정)이 2006년에 환수되었고, 1책(2019. 6. 26. 국보 추가지정)이 2018년 환수되어 총 75책이 국립고궁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말이 있다. 일제에 빼앗겼던 문화재를 되돌려 받았다면 마땅히 제자리로 돌려놓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많은 사람이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서울에 두어야 한다는 주장도 있지만 지방에 사는 사람도 귀중한 문화재를 가까이에 두고 즐길 권리가 있다.
내가 사는 원주에도 비슷한 일이 있다. 원주 법천사지에 있던 지광국사 현묘탑도 일본에게 빼앗겼다가 돌려받은 뒤 아직 본래 있던 자리로 되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법천사는 지금 절집은 모두 사라지고 터만 남았지만 현묘탑비는 아직도 멋진 모습으로 서 있기에 원주시민으로서 더욱 아쉽다. 하루빨리 돌아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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