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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와 잡담

교권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글: 논어일기 2023. 7.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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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안타깝게 유명을 달리한 초등학교 교사가 있다. 그날 이후로 학교에서 벌어지는 갖가지 교권 침해 사연이 봇물 터지듯이 쏟아져 나온다. 교육부 장관은 마치 이제까지 몰랐다는 듯이 진지한 얼굴로 대책을 논하고 있다. 학교에 있는 모든 교사가 알고 있는 사실을 외면하던 기자들이 쏟아내는 기사를 보니 마음이 불편하다. 굳이 다른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거론하지 않고 우리 학교에서 있었던 일만으로도 교권 침해 사례는 차고 넘친다. 

학교에서 교육은 일어나지 않는다.

장면 #1 시험을 치르고 채점이 끝나면 학생에게 점수를 확인하도록 한다. 점의 좌표를 적어야 하는데 괄호를 쓰지 않은 학생이 있었다. 1점을 감점했다. 사실 틀렸다고 해도 되지만 계산은 맞았으니 나름대로 타협한 셈이다. 그런데 답안을 확인하던 학생이 "에이 **"이라며 쌍욕을 내뱉었다. 어이없지만 내게 한 욕이냐고 되물었다. 혼잣말이니 상관하지 말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그리곤 확인 사인을 하지 않겠다고 했다. 몇 번의 실랑이 끝에 결국 소리를 버럭 지르고 말았다.
"하기 싫으면 하지 마!"
결국 사인을 받았지만 다른 반 학생도 같은 기준으로 채점했음을 증명해야 했다. 왜 소리를 지르냐는 학생에게 소리 질러 미안하다는 말도 했다. 사과는 받지 못했다.

장면 #2 수업 시간에 교사에게 욕을 한 학생 때문에 교권보호위원회가 열렸다. 옛날 같으면 퇴학을 당할 수도 있는 일이다. 하지만 요즘 중학교는 의무교육이라 퇴학은 없다. 권고 전학이 있지만 처음인 학생에겐 줄 수 없다. 다음으로 학급 교체가 있으나 이건 학생이 아닌 담임 교사에게 주는 벌이나 마찬가지다. 결국 출석정지 3일로 결정되었다. 학교를 시시때때로 빠지는 학생에게 벌이 될 수 없음을 잘 알고 있고 교권 침해 신고를 한 교사에겐 미안한 일이지만 다른 선택지는 없다.

장면 #1은 몸소 겪은 일이고 장면 #2는 교무부장으로서 일을 처리하면서 경험한 일이다. 이제 나이가 오십 중반인 교사로서 지난날을 되돌아본다. 1976년부터 1995년까지는 학생으로 1996년부터는 교사로 학교에 다녔으니 꽤 오랫동안 학교에 몸담고 있다. 따로 석사 학위도 없지만 나름대로 현장에서 기른 전문성은 있다고 자부한다. 정부와 여당에서 교권 침해를 막기 위해 학생인권조례를 손보고 교권 침해 사안을 학교생활기록부에 기재하도록 할 모양이다. 크게 기대하지 않았지만 참으로 어이없는 대책이다. 

그들 눈에는 인권 조례 때문에 학생을 때리거나 벌을 주지 못해서 교권이 무너진 것으로 보이는 모양이다. 중고등학생 때 교사에게 맞은 이야기를 추억으로 생각하는 이들은 모두 친구가 맞는 걸 보았을 뿐 자신은 맞지 않았을 것이다. 내가 겪은 70, 80년대 학교는 학교가 아니었다. 나는 한편으로 진보적이고 한편으로는 보수적이다. 다른 사람의 인권을 침해하는 사람의 인권까지 보호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촉법 소년들이 벌이는 고의적인 범죄에 광분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교사들의 폭력이 난무하던 그 시절에도 별로 맞지 않아서 가끔은 추억으로 소환할 때가 있지만 교사를 위해서도 그 시절로 돌아가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며칠 후 장면 #1에 나오는 학생에게 정색하고 사과를 요구했으나 아직 받지 못했다. 뾰족한 방법은 없다. 그냥 포기하는 것이 답이다. 어지간한 잘못은 무시하고 그냥 지나치는 것도 아동학대라 해도 어쩔 수 없다.

제자들과 길을 걷던 공자님이 길옆에서 똥 누는 이를 만나자 호되게 혼을 냈다. 다시 길을 걷다가 길 한가운데서 똥을 누는 이를 보고는 그냥 지나쳤다. 궁금하게 여긴 제자가 까닭을 물었다.

"길옆에 똥을 싸는 놈은 그나마 양심이 있어 조금만 가르치면 사람이 되지, 그러나 길 한가운데에 똥 싸는 놈은 그 싹수가 노랗고 버르장머리가 없는 놈이라 아무리 옳게 가르친다 해도 소귀에 경 읽기나 마찬가지다. 될 놈은 그 떡잎부터 다르다네."


요즘 학교에는 복도와 화장실 청소를 맡은 노동자가 따로 있다. 주로 연세 지긋하신 여성이다. 장면 #2에 나오는 학생은 장난으로 화장실을 더럽히다가 청소 노동자 눈에 띄었다. 자신을 학생부에 알린 청소 노동자를 힘들게 하려고 수업 시간에 몰래 나와서 화장실 바닥에 똥을 누었다. 이쯤되면 치료가 필요한 금쪽이가 분명하다.

학교는 학문을 배우고 익히는 장이어야 한다. 학교는 탁아소가 아니다. 경찰서로 가야 할 범죄자나 병원에서 치료가 필요한 아이까지 모아두고 서로를 힘들게 하는 곳에서 교육은 일어나지 않는다.

▲ 시골학교  픽사베이 제공 ⓒ 픽사베이
 

과연 교권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공부는 학원에서 하고 학교는 그냥 졸업장 때문에 다닌다는 조롱도 지겹게 듣는다. 요즘 출석으로 인정해주는 교외체험학습이 있다. 시험이 끝나면 부모와 함께 해외여행을 떠나는 아이들이 아주 많다. 다른 친구들보다 일주일이나 방학을 더 하는 셈이다. 개근 거지란 말이 있다. 어떤 부모와 학생 눈에는 얻을 것도 없는 학교에 꼬박꼬박 출석하는 일은 없는 집 애들이나 하는 일이다. 일 년에 30일까지는 학기 중에 수시로 빠져도 결석으로 기록되지 않는다.

무단으로 학교를 빠지는 아이들도 많다. 63일을 넘기면 진급을 할 수 없다. 결석이 많아서 유급당할 위기를 맞았을 때는 학업중단숙려제가 있다. 일주일에 한 번 학교에 나와 상담을 받으면 출석으로 인정된다. 이런 제도 때문에 아무리 불성실해도 좀처럼 유급되지 않는다. 지각이나 결과와 조퇴는 세지도 않는다. 어떤 학생은 17주 동안 어떤 수업에 한 시간만 출석했지만 진급했다. 수업도 듣지 않고 시험도 치르지 않아도 진급하고 졸업할 수 있다. 어쩌면 대부분의 교사는 망나니 같은 아이를 다시 가르치기보다 빨리 진급이나 졸업을 시키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교권이 무너진 까닭을 묻는다. 애초에 우리나라 교사에게 교권은 없다고 생각한다. 수업 시간을 채워야 할 어떤 최소한의 기준도 없는데 막무가내인 학생을 어떤 권한으로 붙잡아 가르칠 수 있을까? 요즘은 수행평가가 있다. 수업 시간에 과정을 평가하는 것이다. 이름 그대로라면 교사가 시험으로 평가하지 못하는 부분을 수업 시간에 평가하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수행평가에도 객관성을 요구하고 있다. 교사에게 욕하고 대드는 학생도 시험만 잘 보면 교과우수상을 주어야 한다.

교사에게 진정한 평가권을 주는 것이 교권을 살리는 유일한 대책이라고 믿는다. 학생을 체벌할 권한 따위는 필요 없다. 학생부에 교권 침해를 기록할 권한보다 학생부에 아무것도 쓰지 않을 권한을 바란다. 학교생활기록부가 수시모집에 쓰이는 고등학교에선 나쁜 짓만 골라서 한 학생이라도 좋은 점을 찾아내 기록해야 한다. 당장 교사에게 온전한 평가권을 주기 어렵다면 이런 말도 안 되는 지침부터 없애길 간절히 바란다. 적어도 평가를 기록하지 않을 권리라도 있어야 한다.

요즘 작은 다툼으로 벌어진 학교폭력 사건도 좀처럼 조정하기 힘들다. 학교생활기록부에 내용이 기록되기 때문에 대부분 끝까지 간다. 아예 학폭 사건을 찾아서 소송을 부추기는 변호사도 있다. 교권 침해까지 학교생활기록부에 기록한다고 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교권을 침해당한 교사는 소송에 휘말려 겪을 고통이 두려워 아예 침해 사실을 신고하지 못할 것이다. 

진정한 평가권은 학생을 교사가 세운 평가 기준에 따라 엄정하게 평가할 수 있는 권한을 말한다. 최소한의 기준에 다다르지 못한 학생에겐 재수강을 요구할 수 있어야 한다. 어떤 이는 과락을 경험하게 될 아이가 입을 상처를 말할 것이다. 어떤 이는 교사의 전문성을 탓할 것이다. 실패를 겪고 이겨내는 과정은 교육에 꼭 필요한 과정이다. 간단한 산수도 못하는 아이를 중학교와 고등학교에 다니게 한다고 아이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다. 여러 대안학교의 졸업장도 폭 넓게 정식 학력으로 인정하면 유급이나 과락으로 생기는 문제를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옛날에 서머힐과 같은 학교를 꿈꾸던 때가 있었다. 이제는 한 교실에 30명이나 있는 공교육에선 이룰 수 없는 꿈이라고 생각한다. 교사에게 진정한 평가권을 주는 것이 어렵다면 제발 학급당 인원을 줄이고 학교마다 정원에 맞춰 교사를 충원해 주길 바란다.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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