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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와 잡담

이대남을 위한 변명

글: 논어일기 2022. 1.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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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위터를 들여다보기 불편해서 앱을 지웠다. 대선 국면을 맞아 얼토당토않은 헛소리가 난무하는 타임라인에서 느낄 수 있는 재미는 없다. 이재명과 윤석열 두 후보를 향한 도를 넘는 비난과 욕설이 합리적인 정책 대결이 설 자리를 채우고 있다. 에스앤에스만 그런 것이 아니다. 정도 차이는 있지만, 신문과 방송도 가십거리만 보도하고 있다. 수없이 발표되는 온갖 여론조사 결과를 분석하는 글들이 넘쳐난다. 이른바 '이대남'이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를 지지하고 있다 사실은 대부분 분석이 내놓은 공통된 의견이다. 페이스북에 이대남은 어머니나 누나, 여동생도 여자 친구도 없냐고 적었다가 지웠다. 꼰대 취급을 받기 싫어서가 아니다. 교사인 나도 오늘날 '이대남 현상'에 책임이 크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학교에서 시사와 동떨어진 수학을 가르치고 있다. 젊은 시절엔 수학을 가르치다가도 짬이 나면 세상 이야기를 많이 했다. 1994년에도 2002년에도 북핵 위기가 있었다. 우연한 계기로 북핵 문제 이야기가 나오자 ‘전쟁불사’를 외치는 학생을 보았다. 전쟁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를 따지고 설득하려고 노력했다. 전쟁이 나면 우리는 스타크래프트를 즐기는 게이머가 아니라 파리 목숨이나 다름없는 마린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했던 기억이 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지 몰라도 요즘은 듣고도 못 들은 척 수학 문제만 열심히 풀고 있다. 수학은 냉철한 이성을 기르는 것이 가장 중요한 목표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죄가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쳐라." 성경에 있는 말이다. ‘이대남’을 돌로 칠 수 있을까 생각하다가 이대남을 위한 변명을 적는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십 대 남자가' 동일한 정치 성향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서 이대남 현상을 반만 믿는다.

학교는 민주주의를 가르치고 있는가?

민주주의에는 존중, 이해, 배려, 대화, 설득, 타협, 절충, 합의, 다수결과 소수자 보호 등이 필요하다. 강원도교육청 부서에 민주시민교육과가 있다. 학교마다 학생자치회가 있고 교육과정엔 학급 자치 회의를 위한 시간이 배정되어 있다. 학교에 민주라는 말을 차고 넘치지만, 과연 그 가치가 제대로 구현되고 있을까? 예산 편성은커녕 스스로 결정할 일이 거의 없는 학생자치회는 허울뿐인 학교가 많다. 옛날과 크게 달라지긴 했지만, 여전히 두발과 복장을 규제하는 학교도 있다. 자치회의는 학교에 건의할 사항이나 몇 건 올리는 무늬만 회의일 때가 많고 이마저도 없이 자율학습 시간이 되고 마는 경우가 흔하다. 결정해서 바꿀 권한이 학생에게 없으니 당연한 결과다. 교사도 치열한 토론과 협의를 통해서 학교 운영을 결정한 경험이 없으니 대화, 설득, 타협, 절충, 합의를 가르칠 수 없다.

학교에서 학생을 가르칠 때 이준석 대표처럼 말하는 남학생을 만날 때가 잦다. '여자 때문에 남자가 설 자리를 잃었다.', '정부는 여성만을 위한 정책을 펴서 남성을 차별한다.', '복지정책을 늘리면 젊은이는 늙은이를 위해 세금만 많이 내게 된다.', '정부가 북한과 중국 눈치를 보며 끌려다닌다.'라고 말한다. 이들이 '여성가족부 폐지'와 '선제타격'을 외치는 후보를 지지하는 것은 당연하다. 아무리 국민의힘은 민정당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말한 들 소용이 없다. 민주당과 국민의힘을 크게 다르다고 여기지 않는다. 그냥 역사책에 나오는 노론과 소론 사이의 당파싸움쯤으로 느낀다. 실제로 두 당은 이념과 정책이 크게 다르지 않다. 아직도 학교에서 현대사를 제대로 가르치지 않는다.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에 대한 냉정한 역사적 평가를 해야 할 때가 지났으나 여전히 광주 민주화운동마저도 왜곡하는 자들이 정치권에 발붙이고 있다. 국민의힘이 곽상도 의원 지역구에 무공천을 결정하자 김재원 의원이 탈당 후에 무소속으로 출마한다고 한다. 상식이 있다면 어이가 없어서 웃음도 나오지 않는 상황이지만 그는 아마도 당선될 것이다. 지역구가 대구에 있기 때문이다. 광주, 전남 사람들이 국민의힘에 표를 주지 않는 것과 대구, 경북 사람들이 민주당에 표를 주지 않는 것을 같은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이재명 후보를 지역감정 운운하며 탓하는 이준석에 동의하는 이대남도 적지 않다. 모두가 적이거나 경쟁자라는 논리 앞에 존중, 이해, 배려 따위는 설 자리가 없다.

‘스스로를 비둘기라고 믿는 까치에게’라는 책이 있다. 아주 오래전에 읽어서 내용은 전혀 생각나지 않지만, 제목만큼은 또렷하게 기억한다. 김진경 선생이 책을 쓴 80년대엔 우리 교육을 바꾸자는 담론과 행동이 있었다. 40여 년이 흐른 오늘날 학교 현장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지만 이제 변화를 위한 담론도 행동도 없다. 오히려 수능 성적에 따라 모든 걸 결정하는 것이 공정하다는 주장이 세를 얻고 있다. 인천공항공사가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채용한 일을 불공정하다고 여기는 사람도 상당히 많다. 정의당 심상정 후보를 지지하는 이는 3%쯤이다. 노동자가 노동 귀족 운운하며 자본가를 일방적으로 편드는 후보를 지지한다. 학교는 사회를 그대로 반영하는 거울이다. 서로 불편하게 따지지 말고 닥치고 재테크를 외치는 사회는 학교에 그대로 투영된다. 독서도 봉사활동도 입시 때문에 하는 상황에서 닥치고 공부해서 출세하라는 말은 상당한 지지를 받는다. 소수자를 차별하지 말고 배려하자는 말은 통하지 않는다.

이대남은 죄가 없다. 이제는 쌍팔년도로 불리는 암울했던 시절에도 수업 시간 틈틈이 무지몽매에 빠져 박정희, 전두환을 찬양하던 우리를 깨우기 위해 열변을 토하시던 선생님이 계셨다. 그 시절 선생님보다 더 나이를 먹은 나는 학교에서 무엇을 어떻게 가르쳐야 할까? 요즘 논어를 읽고 있다. 공자는 나이 든 이에게 편안하고 친구에겐 믿음직스러우며 젊은이에겐 그리운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좋은 말씀이라 인생 목표로 삼기로 했다. 여기에 덧붙여 제자에게 민주주의를 가르친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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