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일하는 학교에 잠깐 들렀다. 꿈은 이루어진다던 2002년, 아내와 난 같은 교무실에서 근무했다. 지금은 '영서고'이지만 그때는 '원주 농업고'였다. 높고 푸르른 가을 하늘이 좋아서 교정을 둘러보며 사진을 찍는다. 딱 1년만 근무해서 별다른 추억은 없지만 여기서 처음 만나 인연을 맺은 우리 부부에겐 뜻깊은 장소다.
세월이 이십 년이 흘렀으니 참 많이 달라졌다. 운동장에 인조 잔디가 깔리고 학과 이름도 다 바뀌고 골프산업과처럼 새로 만든 학과도 있다. 교훈도 바뀐 느낌이다. 옛날엔 성실 비슷한 단어였는데 배움, 가르침, 사람됨. 뭔가 세련된 느낌이다.
여전히 교문에서 교실까지 멀어도 너무 멀다. 조경과 2학년 담임이었는데 버스에서 내려서도 한참을 올라와야 해서 지각하는 아이들이 많았다. 예나 지금이나 일반계는 등하교를 챙겨주는 학부모가 많지만, 농업고 학부모들은 대체로 아이들 등하교까지 챙길 여유가 없다. 그런데 학교는 쓸데없이 넓어서 걸어 다니기 너무 힘들다. 학생들은 과연 돌탑에 새긴 글귀처럼 '시방 여기가 참 행복하네'라고 느끼고 있을까.
교정 곳곳에 선배들이 기수별로 금연을 독려하는 현수막을 내걸었다. 오히려 학생들의 흡연이 얼마나 심각한가를 말해주는 것 같아 안타깝다. 경험한 바로는 흡연보다 심각한 것은 아이들이 꿈과 희망은커녕 어떤 의욕도 없다는 것이다. '학습된 무기력'이란 말이 있다. 실패만 거듭하다가 결국 모든 걸 포기하고 어떤 시도도 하지 않는 상태에 이른 걸 일컫는다. '학습된 무기력'에 다다른 학생들이 빠르게 늘고 있다. 학교에서 아이들 가르치는 일이 점점 힘들어지는 까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