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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와 잡담

도를 넘은 박정희 따라하기

글: 논어일기 2023. 1.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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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는 보는 사람 눈에 따라 쿠데타로 정권을 잡고 무려 18년 동안 독재자이면서 한강의 기적을 일으켜 보릿고개를 잊게 해 준 위대한 대통령이기도 하다. 피도 눈물도 없는 독재자 박정희도 백성을 내 몸같이 아끼는 자애로운 지도자 박정희도 이젠 모두 역사 속에 잘 접어둘 때가 되었다. 아니 벌써 많이 늦었다. 쿠데타를 일으킨 61년에 태어난 이는 환갑이 지났고 그가 죽은 79년에 태어난 사람도 이제 오십이 멀지 않았다. 90년이나 2000년에 태어난 이들에게 박정희는 아마도 고종이나 순종과 다름없는 역사 속 인물일 뿐이다. 참고로 박정희는 1917년에 태어났고 딸인 박근혜는 1952년에 태어났다. 아들 박지만은 그 유명한 58년 개띠다.

요즘처럼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세상 속에서 아직도 박정희 타령에 젖은 이들을 보는 일은 참 힘들다. 더욱이 박정희 향수에 젖은 이들이 정치 지도자 행세를 하는 꼴을 더는 봐주기 어렵다. 

서민정 외교부 아시아태평양국 국장이 이날 공개한 '해법'은 대법원으로부터 배상 판결을 받은 일본 기업을 대신해, 제삼자인 한국의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이사장 심규선)이 판결금(배상금)을 강제동원 피해자에게 갚는다는 것이다.

이제는 하다하다 굴욕적인 한일협정을 따라 할 모양이다. 아주 어렵게 우리나라 대법원이 전범 기업이 피해자에게 배상해야 한다는 정의로운 판결을 내렸다.

2018년 10월 30일, 대한민국 대법원은 신일본제철(신일철주금)이 강제징용 피해자 4명에게 1인당 1억 원씩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원고 4명 중에서 3명은 사망했다. 휠체어를 타고 온 유일한 생존자 이춘식은 98세였다. 나무위키

한일협정 당시 제대로 된 사과나 배상금을 받지 못하고 도움과 원조를 구걸했다. 그나마 경제 발전을 위한 종잣돈을 마련하기 위함이라는 핑계라도 있었다. 독재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서였지만 어찌 되었든 경제 발전을 이루었기 때문에 여태까지 고마워하는 이들이 많은 것이다.

1960년대는 지지리도 못살아서 굶기를 밥 먹듯이 했다고 한다. 69년에 태어난 나도 꽤나 힘든 어린 시절을 겪었으니 얼마나 곤궁했는지 알만 하다. 그러나 2023년 지금은 달라도 너무 다르다. 일본이 여전히 경제 대국이긴 하지만 우리나라도 이제 어깨를 견줄 만한 수준에 이르렀다. 실질 구매력은 우리나라가 앞질렀다는 소리도 있다. 옛날엔 일본 사람들이 우리 관광업계를 먹여 살렸지만 이젠 우리가 일본 관광업계를 먹여 살리고 있다. 

해방된 지 언젠데 아직도 일제 식민지 타령에 젖어 있냐는 타박을 하는 이들이 있다. 맞다. 일본이 이전에 단 한 번이라도 진심을 담아 사과하고 적절한 배상을 했다면 잊어도 벌써 잊었을 세월이 흘렀다. 1945년에 태어난 사람이 이제 팔순을 바라보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역사는 기록되는 것이다. 100년 200년이 흘러도 제대로 청산하지 못한 역사는 깨끗하게 바로 잡아야 한다. 깨끗하게 정리하지 않고 자꾸 뭔가로 덮는다고 지워지거나 사라지지 않는다. 

아직도 떵떵거리며 사는 독재자의 딸에 기대어 오늘을 사는 이들이 많아서 일까? 윤석열 정권이 벌이는 일들을 보고 있으면 이미 한 번은 겪었던 일을 새로 겪는 느낌이다. 이런 걸 기시감이라고 한다. 도대체 언제까지 미래를 내팽개치고 과거를 흉내내는 일만 할 것인가? 답답한 사람들.... 이러다 깡패 소탕한다고 나서지 않을까 두렵다. 요즘 이정재 배우가 대세인데 박정희 시절에 이정재는 깡패로 유명했다. 

배달 겨레인 대한민국인은 아무리 없이 살아도 꽂꽂한 자존심은 잃지 않고 살아 왔다. 청나라를 떼놈으로 일본은 왜놈으로 얕잡아 부르던 사람들이 사는 나라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 중국말도 일본말도 아닌 우리말을 쓰고 있는 것이다. 잠시 정권을 맡겼다고 모든 걸 맘대로 하라고 허락한 것은 아니다. 민족을, 백성을 배신하는 정권은 강력한 퇴진운동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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