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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화 제 십칠 편을 시작한다. 양화는 공자의 삶에 큰 영향을 끼쳤던 인물이다.
陽貨欲見孔子, 孔子不見, 歸孔子豚. 孔子時其亡也, 而往拜之. 遇諸塗.
謂孔子曰: "來! 予與爾言." 曰: "懷其寶而迷其邦, 可謂仁乎?" 曰: "不可".
"好從事而亟失時, 可謂知乎?" 曰: "不可"
"日月逝矣, 歲不我與!" 孔子曰: "諾, 吾將仕矣!"
양화욕견공자 공자불견 귀공자돈 공자시기무야이왕배지 우저도 위공자왈 내 여위이언 왈 회기보이미기방 가위인호 왈 불가 호종사이기실시 가위지호 왈 불가 일월이서의 세불아여 공자왈 낙 오장사의
노나라의 실권자 양화( 陽貨 )가 공자를 만나려고 하였다. 공자가 만나려 하지 않자, 양화는 공자에게 삶은 통멧돼지 한 마리를 선물로 예를 갖추어 보내었다. 이제 사례를 아니 할 수 없는지라 공자는 양화가 집에 있지 않은 틈을 타서 예방하려 하였으나 그만 가는 도중에 그와 맞부딪치고 말았다.
양화가 공자를 불러 말하기를 "이리 오시오. 내 그대와 더불어 말 좀 하리이다."
그가 말하였다. "찬란한 보석과도 같은 재능을 가슴에 품고도 나라를 어지러운 채 버려두는 것을 인이라 일컬을 수 있겠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그렇지 않소이다."
"종사하기를 좋아하면서 때를 자주 놓치는 것을 지혜롭다 일컬을 수 있겠소?"
이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그렇지 않소이다."
"일월이 흐르는 구료. 세월은 내 뜻과 더불어 흐르지 않습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알겠습니다. 언젠가 나도 벼슬을 하리이다."
양화( 陽貨 ): 노나라의 실권자로 권력의 절정에 있었던 사람, 주로 양호로 불리는데 공자보다 나이가 많음.
양화는 계씨의 가신에서 출발해 높은 교양을 갖추고 정치권력을 장악한 뒤, 삼화의 세력을 누르는 정치혁명을 이뤄낸 정치전문가였다. 그러나 양호는 3년 뒤 권력을 잃고 노라 임금의 상징인 보옥과 대궁을 훔쳐서 제나라로 망명하는데, 이 사건은 <춘추>에 기록될 만큼 중대한 사건이다.
제나라 군주가 양호를 위험인물로 여기고 체포하려 하자, 양호는 다시 탈출해 송나라를 거쳐 진나라로 갔다. 이 장의 대화는 양호가 전권을 쥐고 있던 BC 505년에 있었던 듯하다. 도올 만화논어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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