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논어

헌문편 17

글: 논어일기 2023. 9. 6.
반응형

子路曰, “桓公殺公子糾, 召忽死之, 管仲不死. 曰未仁乎?” 子曰, “桓公九合諸侯, 不以兵車, 管仲之力也. 如其仁, 如其仁.”

자로왈 환공살공자규 소홀사지 관중불사 왈미인호 자왈 환공구합제후 불이병거 관중지력야 여기인 여기인

자로가 여쭈었다. "제나라의 임금이 된 환공이 라이벌 공자 규를 죽이자 그를 모시던 소홀은 같이 순직하였는데 관중은 살아남았으니 관중이야말로 인하지 못하다 말해야 할 것 아닙니까?"

이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환공은 제후들을 아홉 번이나 규합시키면서도 병거를 쓰지 않았으니 이는 관중의 역량이다. 누가 과연 관중의 인함에 미치겠는가? 누가 과연 관중의 인함에 미치겠는가?"

관중과 포숙은 춘추시대 사람으로 제나라 사람이다. 둘은 어릴 적부터 친구였으며, 늘 같이 행동하였다고 한다. 당시 제나라에서는 무지(無知)가 양공(襄公)을 살해하고 왕위에 오르게 되었다. 하지만 이 무지에게 원한이 있었던 자가 이 무지를 살해하게 되었다.

무지의 사망 이후 차기 왕위 계승자로 떠오른 인물은 2명이었다. 바로 양공의 손아래 동생이자 어머니의 고향인 노나라로 망명하였던 규(糾), 그리고 그 다음 동생으로 거(莒)나라로 망명한 소백(小白)이 차기 왕위계승자였다. 여기에서 규를 보필하던 이가 바로 관중과 소홀(召忽)이었고, 소백을 보필하던 이가 포숙이었다.

규와 소백 사이로 파가 갈리게 되고, 이들은 서로 다투게 되었다. 그리고 무지가 살해당했다는 전갈을 받자, 두 파는 모두 제나라의 도읍을 향해 달려갔다. 이때, 관중은 꾀를 써서 소백 일행이 오는 길목을 지키고 있다가, 그들을 급습하여 소백에게 화살을 날렸다. 소백은 그 화살에 정통으로 맞게 되었고, 이에 관중은 소백이 죽었다고 생각하였다. 하지만 사실 소백은 그 상황에서 허리띠의 쇠 장식에 화살을 맞았고, 순간 기지를 발휘하여 죽은 척 한 것이었다.

소백이 죽었다고 생각한 규파는 천천히 제나라의 도읍을 향하였다. 그러나 소백파는 재빨리 제나라 도읍으로 향해 달려가서 수도를 점거하였다. 결국 규파는 6일 만에 수도에 도착하였고, 그곳에서 죽었다고 생각한 소백을 만나게 된다. 소백이 이후 제나라 왕으로 즉위하니, 그가 바로 춘추오패 중 첫 번째인 환공(桓公)이다.

환공은 즉위하자 규파를 공격하게 되었다. 결국 전세는 환공에게 유리하게 되고, 환공은 규를 지원하고 있던 노나라 측에 통첩을 보낸다.

"규는 내 형제이므로 내 손으로 죽일 수 없다. 노나라 쪽에서 처치해 주기 바란다. 소홀과 관중은 우리 제나라의 반역도로서, 그들을 죽여 소금에 절이지 않는다면 내 직성에 풀리지 으니 신병을 인도하기 바란다. 어쩌다 거부한다면 당장에 노나라를 포위할 것이다."

춘추전국시대를 통틀어 강대국의 위치에 있었던 제나라, 그리고 그에 비해서는 약소국에 불과하였던 노나라는 환공의 통첩을 거절할 수 없었다. 결국 규를 살해하게 되고, 소홀은 자살을 하게 된다. 하지만 관중은 자기의 신병을 제나라로 인도해 주라고 요청한다.

그러한 관중을 환공은 앞서 말한 대로 죽이려고 한다. 하지만 이때 나서서 환공을 말린 사람이 바로 관중의 죽마고우였던 포숙이었다. 포숙은 소백, 즉 환공을 도와 왕위로 옹립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환공 또한 포숙의 말을 무시할 수 없었으며, 관중의 실력을 알고 있었기에 결국 관중을 부하로 삼게 된다.

관중. 그에 대해서 역사는 어떻게 기록하는가? 중국 역사상 최고의 재상 중 한사람으로 관중은 기억되고 있다. 환공은 자신을 죽이려고 하였던 원수인 관중을 용서하고 자기의 부하로 삼은 것이다. <삼국지>에서도 자신을 죽이려고 하였던 방덕을 조조가 부하로 삼지 않았던가? <사기>에서는 관중을 죽이려고 하는 환공에게 포숙이 이렇게 간청을 올린다.

"우리 군주께서 제나라 하나만을 거느리실 생각이시라면 고해와 저 숙아(叔牙) 두 사람의 보좌로도 충분하리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천하를 모두 거느리시는 패자(覇者)가 되시고자 한다면 관이오(管夷吾 : 관중) 말고는 그 밖에 어디 적임자가 또 있겠나이까? 이오를 등용시키는 나라는 꼭 천하를 다스리게 될 것이옵니다. 제발 이오를 잃지 않아야 될 줄로 알고 있습니다."

포숙은 자신의 친구인 관중을 잘 알고 있었다. 천하를 호령할 자격이 있던 관중을 알고 있었기에 그렇게 간청하였고, 결국 자기보다도 더 높은 벼슬인 재상에 관중을 올리게 된다. 관중이 재상에 오르고 나서, 제나라의 환공은 춘추오패 중 첫 번째 패자가 된다.

여기에서 나온 고사성어가 바로 관포지교이다. 관중은 자신을 인정하고, 살려주었으며, 또한 높은 벼슬에 오르게 하여 그 뜻을 펼칠 수 있게 하였던 포숙에 대하여 이렇게 평하였다.

나를 낳아 주신 건 어버이이나, 나를 알아준 것은 포숙이었다.(生我者父母, 知我者鮑子也.)

오마이뉴스 기사: 관포지교, 그 뒤에 숨은 또 다른 이야기


 

 

반응형